아침묵상


2018.5.8


창세기 4장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4장7절) 죄는 기원은 없습니다. 다만 그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죄의 신비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선하신 하나님은 궁극적 존재, 존재 그 자체이십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모두 선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악은 자체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에 기생하는 어떤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절름발이 개의 절뚝거림과 같은 것...그것이 악의 실상입니다. 멀쩡한 다리가 없었다면 그 다리를 저는 일도 없었겠지요. 애초에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거기에 반대하는 악이 생기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순종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종에서 이탈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우주공간에 미아가 되어 떠도는 인공위성이 있다면 본래 궤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빛이 물러갈 때 어둠이 드리우는 법이지, 어둠 자체가 몰려와 캄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것이 보시기에 참 좋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좋은 세상을 회복하는 주님의 일에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부조리들을 한탄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 아닙니다. 빛의 아들들이 주님의 등불로 나타나면 시대의 어두움은 마침내 걷힐 것입니다. 송용원 드립니다.

2018.4.24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하나님의 섭리는 많은 수수께끼 속에 있습니다. 이 모든 신비를 비추는 것은 오직 말씀의 빛 뿐입니다. 하지만 말씀의 빛을 받은 사람이라도 그 수수께끼를 다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의 빛을 받은 사람은 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인내로 소망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말씀이 주는 유익입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섭리의 베일이기에 그 때까지 순전하게 기다릴 수 있는 은총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섭리는 섣부른 낙관론도 경솔한 비관론도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삶의 수수께끼를 부인하지 않지만 또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대의 삶에 가장 어두웠던 순간을 사용하셔서 빛을 그 어두움으로 구워내시는 분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십니다. 인생은 경이로운 섭리를 깨닫는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어떤 것인지 하나씩 깨우쳐 가며 우리는 형통할 때 감사하고 곤고할 때 인내하게 됩니다. 인생 최고의 환희는 하늘의 섭리를 깨달을 때마다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무한한 섭리 속에 들어있나니...오 주님 우리로 오직 경탄의 노래를 부르게 하옵소서. 송용원 드립니다.